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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성불로부터 지내 온 모든 겁수는 한량 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라. 항상 법을 설하여 수없는 억만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게 함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옴이 한량 없는 겁이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는 고로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냄이나, 그러나 실은 멸도하지 않고 항상 이에 머물러 법을 설함이니라.------*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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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1-03-01
 
*법화경 방편품 제 2에서 석가세존으로 부터 모든 부처님은 *근기 따라 방편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는 것과ㆍ*제법의 실상 십여시를 비롯하여 부처님의 *일대사인연과 그리고 *이승작불 *개삼현일의 의미를 알 게 된 사리불존자는 모든 의혹을 끊고 마음에 환희심을 내어 필경에는 성불(成佛)하라는 부처님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자기가 깨달아 얻은 바를 설하는 것으로써 비유품이 시작됩니다.
 
 * 법화경 비유품(譬喩品) 제 3 첫머리에,-----그 때 *사리불이 기뻐 뛰며 곧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우러러 보며 부처님께 말씀하되, 지금 세존으로부터 이 법음(法音)을 듣고, 마음에 즐거움을 풀어 *미증유(未曾有)를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는 42년 설에서 *이승(二乘) *영불성불(永不成佛)이라고 하셔서 사리불존자는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법화경에 들어 오자마자 방편품에서 너희들도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을 하면 성불  곧 부처님이 된다는 말씀에 사리불존자는 너무도 기뻐서 벌떡 일어나 부처님께 합장하고 말씀드리기를
,
---지금 부처님께서 저희들도 다 부처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뛸 듯이 기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고 말씀드립니다.
 
---어찌하여 그러한고, 내가 옛적에 부처님을 따라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보았으니, 모든 보살이 *수기(授記)를 받아 성불(成佛)함이라. 그러나 우리들은 이 일에 참례치 못하여 부처님의 한량 없는 지견(知見)을 상실함을 스스로 마음 깊이 슬퍼하였나이다.-
 
사리불존자는-- 저는 옛날부터 대승 수행하는 보살들에게 후일 부처님이 된다고 약속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런 약속은 받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이대로 마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슬프게 생각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항상 홀로 숲 속이나ㆍ나무 밑에서ㆍ혹은 앉거나ㆍ혹은 거닐면서ㆍ매양 이같은 생각을 하였으니, 우리들도 같은 법성(法性)에 들어 있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소승법(小乘法)으로써 *제도하시는고. 이는 우리들의 허물이고, 세존의 잘못이 아니였나이다.---
 
--저는 부처님의 교(敎)에 대해 생각합니다. 저희들 *이승은 세상 일에 좌우되지 않을 만큼 오랜 동안 부처님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승교를 한 번도 말씀해 주시지 않아 그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저희들의 허물이었습니다. 저희는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해서 설해 주지 않으셨음을 오늘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저희는 이승에 안주했습니다. 결코 부처님의 * 자비가 미치지 않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경지까지 인도하리라 생각하시고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가르치는 편  곧 <성인(聖人)>과, 배우는 편  곧 <범부(凡夫)>는 항상 생각이 서로 어긋난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석가여래께서는 *교(敎)를 극히 소중하게 여기시어 함부로 높은 교(敎)를 설하신다거나 또 함부로 그 제자가 남에게 교(敎)를 설하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석가여래께서 깨달음을 여시고 15년 만에 비로소 제자 중에서 뛰어난 사람에게 를 설해도 좋다고 허락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를 소중히 하셨습니다.
 
잠깐, *<범부(凡夫)><성인(聖人)>과의 구별을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凡)>이란, 환경과 경우에 따라 지배되는 사람입니다. <(聖)>이란, 환경이나 경우를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범부 더우면 괴롭고 추워도 괴롭습니다. 남이 칭찬하면 우쭐하고 남이 욕하면 웁니다. 성인더우면 더위를 이용해서 자기를 단련(鍛練)하고 추우면 추위를 이용해서 자기를 완성(完成)합니다. 남이 칭찬하면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힘쓰고 남이 욕하면 자기를 반성합니다.
 
---어찌하여 그러한고, 만약 우리들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뇩多羅三막三菩提)를 성취하는 인연(因緣)을 설하실 때까지 기다리면, 반드시 대승(大乘)으로 제도하사 *해탈(解脫)을 얻게 하시겠거늘, 그러나 우리들은 *방편(方便)으로 *근기(根機)를 따라 설하시는 바를 알지 못하고 처음에 불법(佛法)을 듣고 곧 믿고 받아서 증득(證得)하였다고 생각하였나이다.-----
 
--왜냐 하면 만약 저희들이 를 듣고 수행해서 마침내 부처님의 지혜를 이루는 길을 설해 주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부처님께서는 필연코 대승교로써 저희들을 구원해 주시어 해탈을 얻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중도에서 싫증을 냈습니다. 부처님께서 낮은 敎, 소승교를 설하셨을 때, 그것은 방편으로 각각 정도에 따라 힘에 알맞게 설하시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소승교를 듣고는 저희들은 이만하면 다 알았다ㆍ충분하다ㆍ고 생각하고 그것 만을 실행할 생각으로 있었습니다. ----
 
사리불존자는 부처님께서  소승교를 설하셨을 때, 그것은 더 높은 데로 이끌어 올리기 위해 방편으로 설하신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가르치는 사람은 <>까지를 알 게 하기 위해 <>을 철저하게 익히도록 가르칩니다. <>을 알면, 그 다음에는 <>까지 알 게 하기 위해 <>을 철저하게 익히도록 가르칩니다. <>을 익히라고 하는 것은 거기 머물러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을 철저하게 알아서 스스로 <>까지 알라는 것입니다. 즉 더 높은 데로 이끌어 올리기 위해 그 준비로서 기본적인 것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우는 편은 그것도 모르고 <쓸데 없는 것만 자꾸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석가여래께서   소승교설하시는 것소승교에 전력을 기울이게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면 더 높은 데로 이끌어 올리고, 또 그것이 이루어지면 다시 더 높은 데로 이끌어 올릴 것을 전제하고 수행을 쌓게 하고자 설하시는 것입니다.
분명코 부처님께서는 *진실교(眞實敎)를 주시기 위해 사람 마다의 능력에 따라 *방편교(方便敎), 소승교를 주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예로부터 주야(晝夜)로 매양 스스로 책망하였더니,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듣지 못하던 *미증유의 법을 듣고, 모든 의심과 후회를 끊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며 쾌히 편안함을 얻었나이다. 오늘에서야 참으로 이에 불자(佛子)였음을 알았나이다.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며 법(法)으로 화(化)하여 나서   circle03_darkgreen.gif  불법(佛法)을 나누어 얻었나이다.(得佛法分)-----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부터 밤낮으로 자신을 책망하였습니다. 오늘 부처님으로부터 *보살도를 쌓아 남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면 부처님과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을 원망도 하고 후회하던 것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저희들은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저희들은 부처님의 敎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의 교화의 힘 가운데서 저희들은 진정으로 부활(復活)하였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 때 사리불(舍利弗)이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되, 저는 이 *법음(法音)을 듣고 미증유를 얻어 마음에 큰 환희(歡喜)를 품고 의심을 이미 다 끊었나이다.---
 
---사리불존자는 게송으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부처님께서 수행 여하에 따라 부처님이 된다는 말씀을 듣고 일찍이 느끼지 못한 커다란 기쁨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을 의심하고 있던 그 헝클어진 생각들을 이미 다 없어졌습니다.---
 
---예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입사와 대승을 잃지 않았도다. 부처님의 말씀은 심히 희유(希有)하여 능히 중생(衆生)의 *번뇌(煩惱)를 제(除)하시니, 저는 이미 *누(漏)가 다하여 이제 듣고 또한 근심 걱정을 끊었나이다.----
 
----저는 오랜동안 부처님를 듣고 세속적인 미혹(迷惑)을 끊었습니다. 소승교대승교를 전제한 것, 부처님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능히 중생의 번뇌, 근심이나 걱정을 모두 끊어 주십니다. ---
 
높은 敎를 들어 보면 낮은 敎가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게 됩니다. 낮은 쪽만 듣고 있을 때는 그것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마는 높은 데 이르러 보면 <낮은 데에 노력하였던 것이 참으로 필요한 것이었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은 본래부터 부처님의 敎를 배웠지마는 지금 새삼스러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들어 보니 이것은 다 자기들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여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런 경문이 되겠습니다.
 
----제가 산곡(山谷)에서혹은 수풀이나 혹은 나무 밑에서앉거나 또는 경행(經行)하며 항상 이 일을 생각하고 한탄하며 깊이 자책하되 어찌하여 이 뿐인가, 우리들도 또한 불자(佛子)로서 같은 *무루법(無漏法)에 들었건만, 미래에 능히 *무상도(無上道)를 설하지 못하며,-----
 
---- 저희들은 근기가 낮은 사람이므로, 나 한 사람 마음의 번민을 제거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도가 낮아서 도저히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책망하였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마음의 迷惑을 없애는 는 배웠지마는, 어째서 부처님를 세상에 펴는 *(道)를 배울 능력은 없는가 하고 생각하며 한탄하고 있는 것이 모두 잘못이었음을 지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깨달았습니다.----
 
---금빛의  * 삼십이상(三十二相) *십력그리고 모든 *해탈(解脫)이 같은 한 법 가운데 있거늘 이 일을 얻지 못하며,----
 
-부처님의 삼십이상과ㆍ가르치심의 힘과ㆍ그리고 가지가지의 해탈이 모두 한 법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우면서 부처님의 지혜에는 전연 인연이 없었습니다. 실로 원통할 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참괴합니다.---
 
<삼십이상>이란, 설흔 두 가지의 상(相)을 갖추신 부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삼십이상은 마음 속에 있는 덕이 저절로 신체에 나타난 것을 말하며 꼭 설흔 둘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인도 사회에서는 사물이 갖추어진 것을 말할 때, 여덟 또는 그 곱수(倍數)표현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여덟이라는 숫자 자기를 중심해서 앞(前) 뒤(後)좌(左)우(右)넷과, 그 모퉁이 합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물이 갖추어졌다는 뜻을 여덟으로써 나타냅니다.
 
---- *팔십종(八十種)의 묘호(妙好)와,  circle03_darkgreen.gif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이와 같은 공덕(功德)  등을 나는 이미 다 잃었는가.----
 
---부처님의 팔십종호의 아름다움과, *십팔불공법의 공덕,  좋은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이 저희들에게는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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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불법(佛法)을 나누어 얻었나이다(得佛法分=득불법분)
 
중국 *천태대사께서는 <불법(佛法)을 나누어 얻었나이다> 하는 이 경지는 여간해서는 도달하기 힘들다 하면서 그 과정을 분석하여 <육즉(六卽)>이라고 주석하여 내놓으셨습니다.
 
육즉(六卽)이란, 불법(佛法)을 배워서 수행을 시작해서부터 부처님이 될 때까지의 사이를 여섯 단계, 곧 이즉(理卽)  명자즉(名字卽)  ③ 관행즉(觀行卽)  ④ 상사즉(相似卽)  ⑤ 분증즉(分證卽)  구경즉(究竟卽)으로 나누었습니다.
<(卽)>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섯 단계로 나누었지마는 이것은 결코 각각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계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은 그 위치 또는 경지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 경지가 각각 다르기는 하지마는 그것은 마치 층계와 같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 있다는 뜻으로 <>자로 표현했습니다.
 
이즉(理卽)→일체 중생은 모두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惡)한 사람이라도 만으로 뭉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일체가 어리석지 않습니다. 이치적(理致的)으로 *불성을 갖춘 일체의 인간이 다 부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될 수행을 조금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이즉>의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솔 심어 정자라>고 했습니다. 솔의 씨가 흙에 묻히고 수분과 햇볕을 받는다는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큰 나무가 됩니다. 범부도 부처님이 될 불성(佛性)이 있지마는 수행이라는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몇 만년을 가도 부처님이 되지 않습니다. 그 상태를 <이즉>이라고 합니다.
 
명자즉(名字卽)→불교를 약간 배워서 여러 가지 용어나 법구를 알고 있습니다. 보살이란 이런 뜻이다ㆍ부처님이란 이런 뜻이다ㆍ하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이<명자즉>입니다.
 
관행즉(觀行卽)→ 자기가 배운 것과 자기가 행하는 것과를 비교하여 스스로 자기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관행즉>입니다. <법화경을 전부 알았다이만하면 나는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마는,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배웠지마는, 나는 원래의 범부 그대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내 행동의 어디엔가 잘못 된 점이 있지 않은가반성해 보아야겠다>고 스스로 자각하는 과정이 <관행즉>입니다.
 
상사즉(相似卽)→ 누구나 수행을 쌓으면 겉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만으로는 부처님과 별로 차이가 없이 되는 것, 상(相)만은 닮은 것이 <상사즉>입니다. 형상마음이 일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큰 소리로 남을 욕하는 일은 없지마는 마음속으로는 욕을 하면서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와같이 형상에 나타난 모양은 부처님과 비슷하지마는 속으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닮았어도, 마음이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형상만이라도 부처님을 닮겠다고 노력하는 그런 경지가 <상사즉>입니다.
 
분증즉(分證卽)→자기의 처지에 따라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행해 보아야 비로소 <아, 이것이로구나> 하고 알 게 됩니다. <(分)>이란 그 사람의 경지그 사람의 지위그 사람의 환경ㆍ등 일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分)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장사를 하면서 깨달을 수 있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높은 사람은 높게ㆍ낮은 사람은 낮게ㆍ처지에 따라 각기 산 깨달음을 얻는 것<분증즉>입니다. 이쯤 되면 비로소 불법(佛法)분(分)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일부분이라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 그 일부분이라도 자기의 것이 된 사람 그 사람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화를 줄 수가 있습니다.  
 
구경즉(究竟卽)→ 이것은 최후의 깨달음, 부처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육즉>에 대해 학구적(學究的)이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마음 가짐 하나로 바로 극락에 가는 것이다>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마는,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 보면, 역시 그렇게 밟아나가는 것이 옳은 길입니다. 아무래도 단번에 깨달음이 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를 밟아나간다고 하더라도, 현재 자기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간단히 말 할 수 없습니다.
범부의 마음 *십계호구인지라 항상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관행즉>까지 갔다가는 다시 뒷걸음질쳐서 <이즉>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높은 데로 올라가게 되므로 현재 자기가 어디에 있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때로는 자기가 생각해도 감탄할 만한 마음이 일어나는 일이 있고, 때로는 자기가 생각해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마음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배워 익혀서(習學) 되풀이 하여 수행하는 동안에 차차 부처님 문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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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십팔불공법이란, 부처님만이 갖추고 계신 열 여덟가지덕성(德性), 공덕입니다. <불공(不共)>이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 부처님이 아니면 좀처럼 그 덕성(德性)을 얻지 못함을 뜻합니다. 성문연각 *이승이나 *보살들에게공동(共同)하지 않는 열 여덟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法)>이란, 라는 뜻이 아니라, 사항(事項)이라는 뜻입니다.
*십팔불공법을 부류(部類)별로 나누어 대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무실(身無失)→부처님께서는   몸으로 행함에 잘못이 없으십니다.
2. 구무실(口無失)→부처님께서는   입으로 말하는 것에 잘못이 없으십니다.
3. 념무실(念無失)→부처님께서는   마음으로 생각함에 잘못이 없으십니다.
4. 무이상(無異想)→부처님께서는   *구원실성 본체론 분상에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해 주고자 하는 생각만 하고 계시고 다른 생각은 조금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5. 무부정심(無不定心)→부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일대사인연으로 오셨으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으십니다.
6. 무부지이사(無不知已捨)→부처님께서는   세상 일을 잘 알아서 그 중에서 필요치 않은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십니다. 부처님 자신을 위한 이해득실을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지위ㆍ명예ㆍ세력ㆍ따위에 마음이 끌리시는 일이 일체 없으십니다.
7. 욕무감(欲無減)→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이상(理想)을 중도에서 감퇴(減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欲)>은 물질적인 탐욕이 아니라, 원력을 세워서 오랜동안 이만한 일을 기어코 하리라 하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상(理想)을 뜻합니다.
8. 정진무감(精進無減)→부처님께서는   *매자의 비원으로 모든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구제하시려는 그 마음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십니다.
9. 염무감(念無減)→부처님께서는  항상 마음에 생각하고 계신 *일체중생구제론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念)>은 굳게 마음속에 가져서 잊지 않는 것입니다.
10혜무감(慧無減)→부처님께서는   *한 사람도 성불 못하는 이가 없다고 말씀하신 무일불성불론(無一不成佛論)에 대해 중도에 쇠퇴(衰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11. 해탈무감(解脫無減)→부처님께서는   세상의 명리(名利)에 관한 욕망을 완전히 없어진 상태가 줄어든다든가 하는 일이 없이 완전한 *적정의 상태에 계십니다.
12.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부처님께서는   세상의 迷惑을 벗어나 있는 동시에 그 벗어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아시고 그 아신 것을 자각(自覺)하시는 그러한 생각이 결코 줄어들지 않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떠난 좋은 행동을 하시는 동시에 그 좋은 행동의 가치를 항상 스스로 분별하시고 결코 중도에서 쇠퇴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지견(知見)>이란, 옳다고 하는 자각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13. 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서 행하는 일체의 일은 다 깊이 생각하여 바르고 좋은 일이다 하는 것을 확인하고 지혜에 따라 행하십니다. <일체신업(一切身業)>이란, 일체의 몸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14. 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입으로 말하는 것은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씀하시는 일이 없이 다 지혜에 따라 잘 분별해서 틀림없이 말씀하십니다. <일체구업>이란, 일체의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15. 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 부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다 지혜에 따라, 바른 것만을 마음속으로 생각하십니다.
16. 지혜지견과거세무애무장(智慧知見過去世無碍無障)→부처님께서는  지혜로서 과거의 세상을 아는 데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17. 지혜지견미래세무애무장(智慧知見未來世無碍無障)→부처님께서는  지혜로서 미래의 세상을 아는 데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18. 지혜지견현재세무애무장(智慧知見現在世無碍無障)→부처님께서는 지혜로서 현재의 세상을 아는 데 거리낌이 없으십니다.<무애(無碍)>는 자유자재(自由自在),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철저하게 아는 것입니다. 이상 십팔불공법은 부처님이라야만 비로소 갖출 수 있는 것, 완전한 인간의 공덕입니다.